손목이 아픈데 왜 손가락까지 살펴볼까요

손목과 손가락은 움직임 속에서 이어져 있습니다

최원장의 진료노트 04 · 원장 한의학박사 최일환

안녕하십니까. 상암동 청심연한의원 원장, 한의학박사 최일환입니다. 손목이 아파서 오셨는데 제가 손가락을 하나씩 펴고 구부려 보면 ‘원장님, 저는 손목이 아픈데 왜 손가락까지 보시나요?’라고 질문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손목과 손가락은 따로 떨어진 구조가 아닙니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여러 힘줄은 손목을 지나 팔로 이어집니다. 물건을 쥐거나 손가락에 힘을 줄 때는 손가락 관절뿐 아니라 손목과 아래팔도 함께 움직입니다. 따라서 손목이 불편한 환자를 진료할 때는 통증이 있는 자리만 보지 않고 손가락이 자연스럽게 펴지고 구부러지는지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 손으로 반대쪽 손목을 감싸 쥐고 손가락을 펴 보이는 모습
손목과 손가락은 실제 움직임 속에서 서로 이어져 있습니다.

제가 손가락을 세심하게 살펴보게 된 데에는 개인적인 경험도 있습니다.

2015년 1월, 대전의 기초과학연구원에서 근무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곤 했는데, 어느 날 갑천변 자전거도로의 보이지 않는 살얼음에 미끄러졌습니다. 이 사고로 왼손 새끼손가락이 골절되어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그다음 재활은 생각만큼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새끼손가락이 제대로 구부러지지 않는 상태가 여러 달 이어졌습니다. 작은 손가락 하나가 불편할 뿐인데 물건을 쥐고, 옷을 입고, 일상적인 동작을 하는 데 생각보다 큰 불편이 생겼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저는 손가락의 움직임이 제한된 환자가 느끼는 답답함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손가락처럼 작은 관절일수록 겉으로 보이는 통증 부위뿐 아니라 관절의 배열과 움직임, 주변 조직의 상태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는 점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진료실에서는 축구나 농구를 하다가 공에 손가락을 부딪친 어린이, 손가락에 힘을 많이 쓰는 클라이밍 동호인, 손목 통증이 오래된 환자들을 자주 만납니다. 손목이 아파서 오셨지만 살펴보면 특정 손가락이 충분히 구부러지지 않거나, 주먹을 쥘 때 한 손가락이 옆 손가락과 겹치듯 돌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손가락의 중간마디와 끝마디 관절은 주로 굽히고 펴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첩과 비슷합니다. 반면 손바닥과 손가락이 만나는 관절은 굽힘과 폄뿐 아니라 손가락을 벌리고 모으는 움직임에도 관여합니다. 외상이나 반복적인 부담이 있은 뒤에는 부종, 관절 주변 조직의 긴장, 힘줄의 움직임 제한 등이 함께 나타날 수 있습니다.

손가락을 편 손에서 힘줄이 손목을 지나 아래팔로 이어지는 모습과, 주먹을 쥐었을 때 같은 구조가 함께 움직이는 모습을 나타낸 도식
그림 4. 손가락을 움직이는 힘줄이 손목을 지나 아래팔까지 이어지는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오른쪽은 주먹을 쥘 때 같은 구조가 함께 움직이는 모습입니다. 그림은 구조를 설명하기 위한 도식이며 실제 해부학적 비율이나 개인의 상태를 그대로 나타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손가락을 편 상태만 보지 않습니다. 환자분에게 천천히 주먹을 쥐어 보도록 하고 손가락 끝이 향하는 방향, 손톱의 배열, 옆 손가락과 겹치는지, 어느 구간에서 움직임이 멈추는지를 관찰합니다. 손목의 굽힘과 폄, 아래팔의 회전, 눌렀을 때의 통증과 부종도 함께 확인합니다.

다만 손가락이 휘거나 돌아가 보인다고 해서 모두 같은 문제는 아닙니다. 특히 다친 직후 심하게 붓거나 모양이 달라진 경우, 손가락을 움직이기 어렵거나 감각이 둔한 경우에는 골절·탈구·인대 손상 등을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필요한 경우 영상검사나 정형외과적 평가가 우선될 수 있습니다.

진찰 후에는 무엇을 먼저 살펴보고 치료할지 순서를 정합니다. 손과 손가락은 구조가 작고 섬세하여 한쪽만 자세히 살펴보아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양손을 한꺼번에 진행하기보다 증상이 뚜렷한 쪽부터 충분히 진찰하고 경과를 확인합니다. 치료의 범위를 무리하게 넓히지 않고 환자의 부담과 반응을 살피기 위해서입니다.

손목이 아픈데 손가락을 살펴보는 것은 아픈 곳을 무시해서가 아닙니다. 손목과 손가락이 실제 움직임 속에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확인하려는 과정입니다.

손의 불편함은 작아 보여도 일상에는 큰 영향을 줍니다. 오래되었다고 단정하거나 무리하게 움직이기보다 현재 어떤 관절과 조직에서 움직임이 제한되는지 차근차근 확인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료노트 안내 이 글은 일반적인 건강 정보를 위한 것으로 개인의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증상과 치료 계획은 진찰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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